직장인 감성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 - 1장

직장인 감성 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_1장

📘 1장. 회사는 나를 왜 안아주지 않는가

김차장이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의욕에 차 있었다.
회사의 로고가 박힌 명함을 받고, 사원증을 목에 건 순간, 그는 마치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자격을 증명받은 것 같았다. 회의실 문을 열며 긴장했고, 사무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여기서 나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김차장의 첫 목표였다.

 

처음 몇 년간은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신입사원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눈치가 많이 필요한 자리였다.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회의에서 언제 입을 다물고 언제 끼어들어야 하는지도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선배가 무심코 던지는 말에 의미를 붙이며 고민하고, 퇴근 후엔 유튜브로 PPT 디자인 영상을 보며 따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팀장이 회식 자리에서 말했다.
“김 사원, 센스 있네. 말 안 해도 잘 하니까 좋아.”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기뻤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내가 뭔가 해냈구나' 싶었다.

 

그 후로 김차장은 더 열심히 했다. 새벽 2시까지 남아보고서 틀을 다시 짜고, 팀원들보다 먼저 출근해 회의 자료를 준비했다.
팀원들의 실수도, 상사의 지시 미스도, 그는 조용히 덮었다.
말 없이 해내는 것이 능력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게 ‘프로’의 자세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다.
칭찬은 계속됐지만,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과 발표회에서 팀장은 김차장의 자료를 들고 발표를 하고, 박수는 팀장과 막내가 받았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연말 인사고과 시즌이 다가오면, 김차장은 자연스럽게 기대를 접는 법을 배워야 했다.

처음엔 단지 '운이 없었겠지'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내가 뭘 놓쳤나?'라는 자책이 들었다.
세 번째, 네 번째가 되자 그는 그냥 무표정하게 명단을 내려다보다 조용히 커피를 뽑아들고 자리에 앉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실력은 언젠가 알아보게 되어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알게 됐다.
실력이란 건 꼭 보이는 곳에만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보이지 않는 줄에 줄을 서야만, 아니면 어떤 ‘사람’ 옆에 서야만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분명히 있다는 걸.

그가 가장 속상했던 건, 팀원들의 ‘당연함’이었다.
누군가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당연히 김차장이 하고,
보고서 오류가 발견되면, 당연히 김차장이 고치고,
회식 참석이 적을 것 같으면, 당연히 김차장이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왜 나만?’이라는 질문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지만, 말로 꺼낼 수 없었다.
괜히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가장 참담했던 건, 2년 전 승진 발표였다.
자신보다 5년은 어린 후배가 ‘성과 중심의 파격 인사’라는 이름으로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그 후배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차장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저… 진심으로 감사해요.”
김차장은 술잔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사직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직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에 저장도 하지 못한 채 창을 닫았다.

“김차장님 없으면 이 프로젝트 망합니다.”
팀장이 그렇게 말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그는 이제 안다.
그 말은 ‘당신이 더 책임지세요’라는 뜻이다.
정작 발표는 팀장이 하고, 칭찬은 팀 전체가 받는다.
그리고 돌아서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가 일터에서 느끼는 감정은 ‘공허함’이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피로와 무력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묻는 다른 질문이 더 크게 들렸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지?’

그는 그 질문을 수년째 안고 살고 있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후배가 실수했을 때, 누군가 눈물을 참으며 화장실로 들어갈 때.
그는 늘 앞장서서 일했다.
그리고 그걸 누가 알아주든 말든,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달래며 오늘도 퇴근 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의 하루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그는 핸드폰을 확인한다.
“아기 열이 안 떨어져. 집에 일찍 와줘.”
그 순간, 또 다른 전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