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감성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 - 3장

직장인 감성 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_3장

📘 3장. 내가 나를 놓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김차장은 평소보다 30분 늦게 눈을 떴다.
밤새 둘째가 울었고, 번갈아가며 안아주는 사이 새벽이 지나 있었다.
알람은 꺼져 있었고, 일어나보니 해는 이미 창밖에서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피곤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들었던 감정은,
**‘아, 또 미안해질 일이 늘었다’**는 자책이었다.

부랴부랴 씻고, 출근 준비를 하던 김차장은 문득 멈춰 섰다.

화장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
초췌하고, 지쳐 보였다.
그는 한참을 거울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무 오래 달려왔구나… 나를 잊은 채.”

 

그날 회사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제가 터졌다.
후배의 실수로 고객 미팅 일정이 꼬였고, 급하게 김차장이 조율해야 했다.
점심도 거르고, 회의실을 세 군데 옮겨 다니며 조율한 끝에 겨우 마무리됐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역시 김차장이니까 가능하지”라는 팀장의 말뿐.
칭찬 같았지만, 김차장은 속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퇴근 무렵, 그는 도저히 집으로 바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혼자 바닷가로 향했다.
서울 외곽 작은 도시의 해안 도로.
겨울 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지만, 그건 오히려 선명한 느낌이었다.
그는 해변가 벤치에 앉아 발끝으로 모래를 툭툭 차며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이름 없이 저장된 번호가 떴다.
주저하다 전화를 받으니 오래전 대학 동기였다.
“잘 지내?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그냥.”
그 한마디에 김차장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졌다.

“나… 잘 못 지냈어.”
조용히 흘러나온 말이었다.

친구는 그에게 말했다.
“넌 늘 잘해왔잖아. 사람들 대신 책임지고, 티도 안 내고.
근데 혹시… 너 자신은 지금 어디쯤 있는 거니?”

그 말은 바닷바람보다 더 아프게 가슴을 스쳤다.
‘나 자신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그는 정말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챙기느라, 업무를 책임지느라, 가족을 돌보느라…
자기 자신을 챙긴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그는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종이와 펜을 꺼내 놓고, 머릿속을 비우고 적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든가.”
“무엇이 나를 외롭게 만드는가.”
“나를 웃게 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적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 문장에는 눈물이 고였고, 어떤 문장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오래 머문 문장은 이것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 오래 안아주지 않았다.”

 

다음 날, 김차장은 회사에 출근해 처음으로 **'거절'**을 했다.
팀장이 갑자기 “이거 좀 대신 해줄 수 있겠나?” 하며 준 자료.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분께 맡기셔야 할 것 같아요.”
팀장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김차장이 왜 이래?”
“저도 이제 제 시간을 조금은 지켜야 할 것 같아서요.”

처음 해본 ‘거절’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고, 말하고 난 뒤에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는 아이들과 함께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첫째는 신이 나서 미끄럼틀을 타고, 둘째는 모래 놀이에 빠졌다.
그는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아이가 김차장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아저씨는 아이랑 잘 노네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라도 잘 놀려고요.”

아내도 달라졌다.
최근 들어 둘 사이엔 짧은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김차장이 저녁 식사 후 아이와 책을 읽는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이렇게 말했다.
“당신, 요즘 조금 달라졌어.
예전엔 늘 바빠 보였는데… 요즘은 사람이 보여.”

그 말을 듣고, 김차장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다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은,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일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가족을 위해, 팀을 위해, 회사와 사회를 위해 살아온 김차장.
하지만 그는 이제 안다.
자신을 위한 하루, 자신을 위한 결정,
그것이야말로 진짜 버팀목이라는 걸.

작은 거절, 작은 산책, 작은 미소.
그 작은 것들이,
그를 다시 '김차장'이 아닌 '김현수'로 만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