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감성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 - 4장

직장인 감성에세이_김차장의 인생 스토리 - 4장

📘 4장. 작지만 분명한 변화

처음의 변화는 작았다.
너무 작아서, 본인조차 그것이 변화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느 날,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본 것.
평소였다면 바쁜 발걸음과 무거운 가방만이 눈앞을 가렸을 텐데,
그날따라 그는 저녁노을을 몇 초간 바라봤다.
보랏빛으로 물든 구름 사이에 서서히 사라지던 해.

그건 그냥 노을이었지만,
그의 마음엔 오래도록 남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하루의 끝에
그 풍경이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오늘, 당신 참 잘 버텼어요.”

 

이후로 그는 하루에 단 한 번,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길지 않아도 괜찮았다.
퇴근길 정류장에서 잠깐 하늘을 보는 것도,
지하철 안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는 매일 그 짧은 순간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 안에서 작고 부드러운 공간 하나가 열렸다.
그 공간은 아직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안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오늘 좀 힘들었지?”
“그래도 잘했어.”

그 말은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걸,
김차장은 그제야 알았다.

 

회사에서도 그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어느 날, 팀장이 늘 그랬듯 슬며시 일을 떠넘겼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을 테지만,
그는 이번엔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이건 제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께 배분하시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그 말에 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한, 조금 당황한 얼굴.
하지만 그 이상 묻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 놀랐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었구나.’

그 한 마디가 너무 큰일처럼 느껴졌던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거절은 관계를 깨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그날 퇴근길,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봤다.
작은 승리였다.

 

가정에도 조용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퇴근 후, 그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전엔 아이가 옆에 있어도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다.
회사의 보고서, 내일의 회의, 오늘의 실수들…

하지만 지금은 눈높이를 맞췄다.
작은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고,
장난감 하나에도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빠, 이거 봐! 공룡 그림 그렸어!”
“와, 진짜 잘 그렸다. 이건 티라노사우루스네.”

그 짧은 대화 하나가,
그를 '아버지'라는 자리로 다시 불러냈다.

그는 깨달았다.
아이는 나의 완벽한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구나.
그저,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구나.

 

아내와의 사이에도
말 없는 공기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하루는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을 때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 요즘… 조금 달라졌어.”
“어떤 게?”
“예전엔 눈빛이 좀… 멀리 있었거든.
요즘은, 그냥…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말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죄책감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붙잡을 수 있었다.

 

변화는 외면보다 내면에서 먼저 시작됐다.

어느 날 그는 작은 노트를 꺼내
자기 자신에게 쓴 일기 같은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오늘 회의에서 침착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이랑 손잡고 걷는 게 왜 이렇게 기분 좋지?”
“나는 생각보다 잘 살아내고 있다.”

그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그는 어딘가에서 자신이 회복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여전히 차장이고,
여전히 보고서와 마감과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 속에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꺼내어
숨을 쉬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진짜 변화했음을 느낀 순간은
예상치 못한 날,
팀의 막내가 말없이 김차장에게 커피를 건넸을 때였다.

“차장님 덕분에 요즘 조금 살 것 같아요.”
“왜?”
“그냥… 차장님이 먼저 일찍 퇴근하는 걸 보니까
저도 덜 눈치 보게 되더라고요.”

그 말에 김차장은 웃었다.
자신의 변화가,
누군가에겐 숨 쉴 틈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결국 주변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그제야 알았다.

 

김차장은 이제,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때때로 실수하고, 지치고, 휘청이기도 한다.
하지만 더는,
그 모든 걸 혼자 감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겨내기보다는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자기 자신을 아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었다.